Vegan Life
진리에 대한 톨스토이의 목소리 본문
모든 고전 중에 톨스토이 단편집을 으뜸으로 치겠다.
왜냐하면 톨스토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인 깨우침의 교훈이므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Q. 인간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
Q.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자기 몸에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지식
Q.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을 살피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살아가는 것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르틴은 깨달았다.
꿈은 헛되지 않아 이 날 어김없이 그리스도가 마르틴에게로 왔고
마르틴은 그를 대접했다는 것을...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
이반 쉬체르바코프는 노부의 교훈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이기도 한
"불은 애초에 끄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고 잊지 않았다.
이반은 혹시 누가 자기에게 나쁜 장난을 걸어와도 맞서 싸우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썼다.
또 누가 자신을 욕해도 똑같이 욕하려 들지 않고,
그런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일깨워주려고 노력했다.
두 노인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날까지 자기의 의무를 사랑과 선행으로 다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것이 하느님의 분부라는 것을...
촛불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보이반
바보이반처럼 사는 것이 세상사는 정답인 듯 하다.
어떻게 작은 막마는 빵 조각을 보상하였는가?
"전 다만 그자에게 여분의 곡식을 영글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즉, 그 짐승의 피는 항상 그자 속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자가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마련할 동안은
그 피가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 즈음에는 그자가 한 개뿐인 빵 조각이라도 아끼지 않았는데
곡식에 여유가 생기니 무슨 좋은 위안거리가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자에게 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가 하느님의 하사품으로 술을 담그기가 무섭게
그의 몸속에 여우와 이리와 돼지의 피가 솟아나지 뭡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 술만 마시면 언제든지 짐승이 되어 버린답니다."
달걀만한 씨앗
"소인의 밭은 신의 땅이었사옵죠. 재기질을 한 거기가 밭이었사옵니다.
땅은 자유였사옵니다. 제 땅이란 건 몰랐사옵니다.
제 것으로 불렸던 것은 오직 제 노동뿐이었습니다."
"하문하신 두 가지 까닭이란, 다름이 아니오라
세상 사람들이 제 품으로 살아가기를 그치고
남의 것을 넘보게 되었기 때문이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의 뜻을 좇아 살았사옵니다.
제 것을 가질 뿐,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허어, 장하구려! 땅을 완전히 잡으셨소!" 촌장이 소리쳤다.
바흠의 머슴이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쓰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바흠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1아르신은 70cm)을 팠다.
그것이 그가 차지 할 수있었던 땅으 전부였다.
대자(代子)
이제야 말로 악은 악 때문에 불어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악한 일을 책하면 책할 수록 더욱더 악은 퍼져간다.
다시 말해서 악은 악으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없앨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마침 망아지가 아주머니 말을 들어주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몰아냈을지 막막하지 않은가.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 주셨는지 모른다.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그 농가의 아낙네가 걸레를 깨끗이 빨았을 때 비로소
테이블을 깨끗이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자신에 대한 걱정을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때
타인의 마음도 맑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농민들이 받침대를 탄탄하게 고정시켰을때
수레바퀴의 나무를 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생활을 하느님안에 탄탄히 고정시켰을때
굽힐 줄 모르던 악한 고집도 꺾였던 것이다.
거간꾼들의 화톳불도 불기운이 강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생나무가 탔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을 때
타인의 마음에도 불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머슴 예멜리안과 빈 북
세 아들
자기가 태어나기까지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으며
또 자기라는 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자기라는 것을 만들고 키우면서
이 세상 모든 행복을 맛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라고 말한 것은 하느님이고
아들들은 인간, 행복한 우리들의 생활이다.
인간은 하느님 따위는 없어도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는 인생이란 끊이지 않는 쾌락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들뜬 생활을 즐기고 있으나 마침내 죽을 때가 오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왔는지
죽음의 고통으로 끝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느님을 저주하면서 죽어가고 신을 부정한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맏아들일 것이다.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은
이 생의 목적은 자아의식의 실현이고 자기완성이라고 믿어
자신을 위해 보다 새롭고 좋은 생활을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나
지상의 생활을 완성시키는 동안 그것을 잃어버리고 차차 멀어져 간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들과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신에 대해 알고 있는 일체의 것은
신은 인간에게 선을 베풀고 남에게도 그같이 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본받아 동포에게 선을 베풀어야 되지 않겠는가?
인간이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면 신께서는 그들을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너희에게 바랐던 것이다.
내가 하는 대로 하라. 너희도 나처럼 살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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