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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usement Story/Poetry

아내출장 읽을거리 출장응원 "시"

Vegan Life 2013. 9. 5. 22:42

2009년 9월 10일(목)

<여행에 대하여>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우리의 오감(五感)을 해방시켜야 한다.
눈과 귀를 열고 섬세한 피부의 촉수를 드리우자.
그 곳의 산과 강, 시골과 도시를 흐르는 자연과 사람의 기운

오롯이 담아 느낄 수 있다.

낯선 곳에 가게 되면 또 다른 내가 되어 보자.
팍팍한 일상이 꽁꽁 묶어 놓았던 굴레와 불편함을 벗어버려야 한다.
약간의 일탈을 저지르는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2009년 9월 11일(금)

<낯섦에 대하여>

아침에 눈을 뜨면
귀여운 아이와 그 아이를 닮은 내 또래의 남자가 여름을 타면서

나란히 속옷 바람으로 누워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귀여운 아이와 그 아이를 닮은 내 또래의 남자가

밤새 꿈으로만 다가와, 먼 데 바쁜 아침을 전한다.


2009년 9월 12일(토)

<교감(交感)과 공감(共感)>
서로 주고받는 것이 거래라면

우리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거래를 참 많이 한 셈이다.
눈빛으로 목소리로 아니면 손짓이나 어깻짓으로

참 뭔가 많이도 오고 간 거다.
그래서 기뻤을까, 즐거웠을까, 아님, 섭섭했을까,
이러면서 주고받은 것이 참 많았다.
사르르 사르르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어서

뭐가 오고갔는지 알아채지도 못해도

그래, 참 많이 주고받은 거야.
어떨 때는 피부로 어떨 때는 가슴으로 찡하니 밀고 들어왔고,

어떨 때는 하얀 머릿속에 파랑새가 날아들기도 했어.
그랬지.

2009년 9월 13일(일)

<일몰(日沒) 그리고, 일출(日出)>
어두워지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건

내 마음이 어둡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 속으로 걸어가도 무섭지 않은 건

내 사랑이 나의 신과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어찌나 빨갛든지 선혈처럼 파멸이 온 듯하여

무섭다가 어둠속 나사렛 예수처럼 눈부시었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매일 부활하여 사랑을 전하는 성스러운 아침인거다.

 

2009년 9월 14일(월)

<구원(救援)>
내 스스로 나를 천(賤)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나 하나만 생각하여 나를 내 안에 가두지 않게 하소서
나를 누구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내세우게 하지 마소서
밝은 얼굴과 맑은 정신으로 늘 건강한 몸을 지니게 하소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좋은 일 큰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2009년 9월 15일(화)

<오해(誤解)와 이해(理解)>
말이란 게 얼마나 쓸모없는지 몰라.

내가 그러니까 기분이 그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데 그게 그랬었다고 그러더라니까.

그건 참 억울한 거야.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랬다고 말하니까.

그게 어떻게 그런 거냐고! 말이지

나는 참 그런 거라도 말하고 싶지만 그게 그런 거라고

그렇게 알아들으면 나는 그런 게 되고야 마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 이럴 땐 참 그래.

 

2009년 9월 16일(수)

<범 우주적 인간관>
나를 저 달에 가져가 본다.

외로워서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침묵 속에

나는 그저 둥둥둥 가볍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혹 누가 보면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나를 저 먼 토성 아니 천왕성쯤에 가져가 본다.

아주 춥고 태양도 희뿌옇게 보여서 늘 안개 낀 호숫가이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런던 도시 한가운데 뒷골목 어느 후미진 곳

이른 아침에 깨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

나를 아주 먼 그 어떤 곳에 가져가 본다.

시간이 멈추어서 아주 지루한 그래서 늙지도 않는 별에,

그림 속의 모나리자가 액자에 그려진 이후 몇 살이랬더라

그때 그 나이가 멈춰 아직도 그대로인 사진 속의 그녀처럼,

뭐 그런 별에서는 아, 이젠 좀 늙은 내 모습을 보았으면 하고 생각하겠지.

2009년 9월 17일(목)

<종속(從屬)과 배려(配慮)>
나를 이쪽으로 오라고? 나는 가기 싫어.

나는 물을 싫어해.
물가에 가는 것은 질색이야.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 줘.

아주 예쁘게 말해주면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할지도 몰라.

물은 싫지만 당신이 그 쪽에 있으니 가야 해.

나는 당신에게 길들여질 당신의 운명이니까.

하지만 물이 무서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그래서 당신이 나에게 돌다리를 놓거나,

100년 정도 자란 단단한 나무로 다리를 놓아 준다면

당신에게 갈 수도 있어.

참 무겁고 반듯한 돌멩이, 단단한 통나무 다리.

혹 힘이 부치면 내가 조금 도와 줄 수 있어.

그러면 당신은 나를 안을 수도 있지.

 

튼튼한 돌다리이거나 나무다리 위에 서서

어쩌면 어지럽게 흘러가는 물결을 함께 바라보며

놀란 마음을 진정하면서

입을 맞출 수도 있어.

 

2009년 9월 18일(금)

<그리움과 설렘>
어제까지 놀다 벗어놓고 간 댓돌 위의 검정고무신 속에

망졸망 눈망울을 어제보다도 더 진하게 떠올리며,

야무진 입술이 오물오물 쏟아내는 어린 말들을

어제보다도 더 크게 들어내는 할머니의 눈시울일까.

소풍을 간다고 바나나킥이나 꿈틀이를 가방에 넣어 두고는
폴짝 품속에 기어들어와 그만 손가락을 조물락거리는

다섯 살아이의 젖먹이 때 얼굴을 회상하며

눈맞춤하는 엄마의 마음일까.

지금 나보다 더 날 크게 바라보고 높여주며 아껴줄 그이가
언젠가 부끄럽게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나에게 부드럽게
물줄기 뿌려 씻어주던 그 손길 하나하나가

푸근히 살갗에 되살아남일까.

2009년 9월 19일(토)

<홍파동 2-36번지>

둥근 지구를 반쯤 돌려놓고 보면 보일듯하다.
산등성이 위에 아이와 아빠와 엄마와

조금 때가 탄 하얀 곰인형과

이젠 좀 탈 때가 지난 듯한 세 발 자전거가

얇은 커든사이로 삐죽이 손잡이를 내밀고,

가갸거겨 일이삼사 에이비시디를 하면서 참 잘하고 싶어서

맨날맨날 밥풀 말라붙은 밥상을 끌어안는 희망이었던 꼬맹이.

우릴 참 많이 닮았다고 웃어보는 마흔 한 살 부부가

서로 고맙다고 안아주며 인사하는 2층 창 시원하게 달린

좋은 사람 사는 집.

2009년 9월 9일
지영주 아빠이자 정정은 남편 지인환 드림.

 

출장 응원 시집
홍파동 2-36번지
지 인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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