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an Life
티벳 성자를 찾아서 본문
명상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명상의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네.
동양식이건 서양식이건 어떤 식을 따르는 것은 명상이 아니야.
어떤 식을 따르면 그 어떤 형식에 자기의 마음을 맞추어버리는
결과가 되지. 그것은 자네가 피하려는 것이 아닌가.」
「자기의 마음을 한정해버리면 자네는 벌써 자유롭지 못해.
명상은 자유와 해탈로 이끌어주는 것이어야 하지.
얽매이지 않는 마음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자네가 제 마음의 움직임을 알게 되면 앞으로 몇 달동안
함께 공부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겠지만 자네는 보다 큰
해탈을 얻을 것이야.」
「특정 시스템의 훈련을 받아버리면 어떠한 해탈도 있을 수 없다네.
전보다 더 묶이는 것 뿐이니까. 참된 명상은 마음 저쪽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네. 특정 시스템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방해하지.
왜냐하면 그것은 얽어매고 파괴하는 한낱 자기최면이기 때문이야.」
‘필요한 것은 스승이 아니다. 가장 높은 스승은 자기 자신 안에 있으며
거기에서나 자기가 구하는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관념, 사상, 심상 따위는 본디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고,
진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진리는 모든 피조물(被造物)의
배후에 있는 창조의 본원(本源)이야.
만들어진 것은 진리가 아니며,
‘만들어지지 않은 것’만이 만드는 것이요, 그것은 자네에게도
아니 우리 전체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참이라네.
왜냐하면 모든 것속에 ‘하나인 존재’가 있고
‘하나인 존재’속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야
상념(想念)은 일어날 때마다 파동을 내어
육체의 원자나 세포에 서로 다른 움직임을 자아내기 때문에
얼굴의 근육은 상념의 파동을 모양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법.
심장의 고동과 호흡이 육체조직의 변화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지.
원인과 결과는 하나이지.
하나님의 창조란 영원히 한결같은 지혜있는 에너지를 변화시켜
모양으로 나타나게 함이야. 그것은 신의 마음에서 나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다 큰 아름다움이 된다네.
파동이 창조의 기본이고 그 리듬에 실리어 원자가 조직되어서
우리들의 눈 앞에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야.
우리가 육체를 떠날 때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체있는 생명과 우주의 모든 생명의 총체와는
아무런 나뉨도 갈라짐도 없다. 그대로 한 생명인 것이다.
이른바 죽음은 그것을 갈라놓는 것도 떼어놓는 것도 아니다.
원래 피로란 육체가 땅으로 끌리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고
몸을 놀리기에 힘이 소모되기 때문이지. 즉, 인력 때문에
피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발신장치와 수신장치가 갖추어져 있다.
바로 뇌하수체가 발신장치인 셈이고 송과선이 수신기이다.
한 사람으로부터 상념이 방사되고 거기에 동조되어 있는
상대방은 그것을 수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수신을 할 때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마음속으로 느낌이 흘러드는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드는 느낌이 상념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내용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느낌 그것이고 결코 사고(思考)가 아니다.
수신자가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상념은 뇌하수체를 작동시켜
그것이 송과선의 수신작용을 혼란시키는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이
네가 본 것, 네가 들은 것, 네가 읽은 것으로 조립된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빈 껍질임을 너는 이제 깨달았다.
‘참인 것’을 발견하려면 제 마음속을 뒤져 거짓인 것을 끌어내야 해.
네가 ‘나’라는 그것의 마음 속에서 쥐고 있는 것은 모두 참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한낱 축음기로써 레코드를 이것저것 바꾸어 틀고 있는
것 뿐이다. 너 자신이 그저 남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스스로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음악인이어야 해.
우리가 남들 속에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속에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들이라네.
「진리는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지배하는 종교, 인간, 그것이 먹이가 되어버리는
문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의 이 세계 일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짓이다. 그들은 ‘참’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뭔가 의지할 것, 이끌어 주는 것을 바란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의 노예가 된다」
‘참으로 있는 것(實在)에는 구별이 없다.
따라서 종교든, 국가든, 이상이든, 신앙이든,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는 것은 모두 가짜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안’을 찾아내고 ‘해탈’을 얻으려면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평안이나
해탈을 명상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묶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에 어떻게 얽매여 있고 그 마음속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지 못하면 명상이든, 기도든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해서 ‘갈라짐’이 생겼는지를 모르면 이른바
‘하나됨’이든 ‘평안’이든 ‘해탈’이든 그밖의 어떤 이름으로 불러본들
그것은 그저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한낱 관념에 불과하다.
「어떤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때는 그 정체를 꿰뚫어 보아야 할 일이지.
그것과 싸워서는 안된다. 생각이라는 것은 모두가 무언가 다른 사물의 결과이며
그 사물의 값어치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하면 어떠한 투쟁도, 공포도, 한정도,
혼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 어떤 갈등도, 긴장도, 투쟁도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대의 마음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평안이 생겨난다. 우리들의
일을 위해서는 이런 마음을 꼭 그대가 지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대는 순간순간 제 마음의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일상생활 속에서 길러야 한다.
자기 자신의 어떤 마음을 정신분석 할 때만이 아니라
항상 ‘현재’속에서 감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알 수 있게 되며
자아(自我)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아를 아는 것이 바로 슬기와 참 도리에의 관문이다」
병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 뿐인 것이다.
얼은 병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기심, 빼앗고 받기만 하는 마음, 탐욕, 미움, 적의, 인색,
완고, 난폭은 자아의 것이며, 이것들이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다.
본래 자아란 무(無)임을 꿰뚫어보고 깨달으라. 그 때 자네는 겸허해지고,
그대로 우주의 한 얼이 일하시는 경로(經路)가 되리라.
자아라는 사슬을 끊어버려라.
그러면 나머지 일은 신이 섭리하신다.
자네 자신의 마음에서 일체의 걸림 곧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거룩한 힘이 거침없이 작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야, 물질이란 없는 것이라네.
물질이란 육체 인간이 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어떤 질료에 붙인
하나의 이름일 뿐이고, 어떤 것의 이름은 질료 그것은 아니야.
이름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관념이 될 뿐이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관념대로 이해할 뿐이지.
일체의 것은 마음 속의 파동이며, 의식이 그것을 지배하는 요인이니,
은자님은 물질인 질료의 진동수(振動數)를 올려 다른 차원의
파동으로 바꾸고 그 상태를 유지시킬 수가 있지.
그것은 은자님이 물질의 본성을 속속들이 깨달아
모든 고정 관념에서 해탈하셨기 때문이지.
‘창조되지 않은 것’의 창조성을 잃고 만단 말이야.
물질이란 ‘드러나지 않는 것’의 나타남임을 깨달았을 때,
자네는 자신을 한정하고 있는 그와 같은 관념의 허구로부터
자네 자신을 해방할 것이다. 그리고 자네에게는 전에는 한정하는
것일 뿐이었던, 그러나 실은 한계가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우주 전체를 그대로 나의 무대로 하는 대자재를 맛볼 것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절대의 것’은 마음이 제멋대로 지어 놓은 자기 한정에서
자기를 해방시킨 마음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
만사 잘 되도록 준비되어 있다네.
우주를 지배하는 예지가 있고, 그 예지는 또한
우리들까지도 지배하고 있음이 깨달아졌다.
그 예지는 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사물이라도
빠뜨리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로부터 이 신념은
항상 나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 스스로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으며,
우주의 예지에 모두를 그대로 맡겨 버린다. 그러면 일체가
나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몇천배나 자유롭게 진행된다.
창조성 속에는 무지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무지나 공포는 깨닫지 못한 인간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명석한 의식을 통하여 창조성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육체 속의 무수한 세포를 꿰뚫어 흐르며 창조성 본래의
믿음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창조주와 그 피조자는 하나가 된다.
신의 창조성이 우주에 한결같이 있는 에너지를 바꾸어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하듯이,
우주에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힘이 있으며
그것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내어 에텔의 원자 무리를 결합시키고,
그것이 물질 차원에서 어떤 물질 원자들의 형태화가 나타나는 바탕이 되며,
그리하여 물질원자 무리가 모여들고 응고하여 어떤 형태의 물질로서
육체의 감각에 인식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영위는 오직 ‘하나’인데,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쪼개어 놓고는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결국은 그 공포대로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로군요.
하부의식 자체는 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성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것에 온갖 나쁜 생각을 가져다 붙이고
그 결과 스스로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대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니라 그 자신의 관념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한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는 자기가 만들어낸 온갖 허구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고
그리하여 해탈을 자각하게 되며, 그렇게 된 다음의 그의 생각은
모두 순수할 뿐이다. 그 때 영원히 지금 두루 있는 거룩한 신령
곧 의식이 그의 마음과 육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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