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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요가]마음 기억 관념 상념 경험 시간 vs 무시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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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요가]마음 기억 관념 상념 경험 시간 vs 무시간

Vegan Life 2021. 12. 5. 00:12

게쉬 린포체가 말했다.
“내가 평생 동안 해온 공부의 정수를 네가 얻길 바란다.

나는 네가 거짓된 모든 것을 보기를 원해.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진리는 마음 자체의 투사일 뿐, 진리가 아니란다."

 

그는 이런 말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참된 명상만이 실재를 드러낼 수 있어.

비록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그것을 드러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마음, 즉 알려진 것으로는 미지자, 즉 알려지지 않은 것을 결코 드러낼 수 없어.

마음은 단순히 관념, 기억, 경험들일 뿐이야.

마음은 온통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지.

따라서 마음은 결코 진정한 진리를 계시해 줄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마음의 투사에 불과해.

그들은 진리에 대한 책을 읽을지도 모르고,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불과한 말들을 들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너는 그런 것들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진리는 오직 내면으로부터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야.

진리는 결코 외부로부터 현시되지 않아.”

 

내가 대답했다.

“예, 링마탕에서 당신과 있었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저는, 하나의 관념에 집중하는 것은 마음을 편협하게 만들 뿐이고,

편협해진 마음으로는 무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심지어 기도조차도 진정한 명상이 아니야.

우리는 어떤 단어나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수 있어.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응답을 받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응답은 실재의 응답이 아니야. 그것은 무의식의 반응이야.

왜냐하면 기도는 단지 구걸하고 기원하는 행위일 뿐, 결코 창조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기도 속에는 항상 이원성이 존재해. 구걸하는 자와 주는 자.

 

예수는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했지.

너희는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어라.

이것은 즉각적인 선물이야.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해.

명상이란 진실로 마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발견하는 과정이지.

바로 지금, 얼마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너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너의 조건이야.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너의 상념 속에서 항상 표현을 구하고 있지.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반드시 알아차려야 해.

그러면 어제도 과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마음이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재가 드러나지.

실재는 항상 바로 지금 현재야.”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진정한 명상은 순간적인 적응성과 무한에 대한 폭넓은 인식이 가능한 마음을 의미해.

따라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녹일 수 있지.

모든 도전이 지금 이 순간 이해되지. 거기에 어제의 반응은 존재하지 않아.

진정한 명상은 자기가 드러나는 과정이야. 자기가 드러나지 않는 명상은 명상이 아니야.

그것은 단순히 어떤 것도 드러낼 수 없는 수축 과정일 뿐이지.”

 

내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모든 내용, 즉 의식적 활동과 무의식적 활동,

깨어 있을 때와 잠들어 있을 때의 활동 모두를 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때때로 그것이 교란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아들아, 그건 네가 결과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가 설명했다.
“이제 우리 한 번 잘 생각해 볼까?
네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너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지.
새로움은 기억을 통해서는 올 수 없어. 그렇지? 기억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내 방식으로 나와 같이 명상해 봐. 그러면 차츰 너는 나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될 거야.
우리는 내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를 발견하기 위해 모색하고 있는 중이야.

 

무엇보다 먼저 자아 인식이 없는 명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아야만 해.
자아 인식은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야.
상위 자아니 하위 자아니 하는 것들은 단지 관념일 뿐이야.

그것은 마음의 산물일 뿐이지.
마음은 시간이야. 시간은 무시간적 존재를 드러낼 수 없어.
따라서 진정한 명상 속에서 상위 자아에 대한 집중은 아무 의미도 없어.
진실로, 명상은 상념 또는 기억의 전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야.
그렇기에 이것은 즉각적으로 성취될 수 있지.

 

진리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야.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지.
시간은 무시간적 존재를 드러낼 수 없어.
기억-상념은 시간의 산물이야. 그렇지 않니?
자, 그럼 자아란 무엇일까?
확실히 그것은 기억이야.

상위 자아든 하위 자아든 그것은 기억일 뿐이야.

 

내가 말했듯이,
상위 자아와 하위 자아에 대한 관념은 단순히 사변적인 것이고 마음의 산물에 불과해.
그렇지 않니? 네가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렇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상위 자아와 하위 자아는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아.
너는 어디선가 그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너는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
그리고 이제 너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야.

 

너는 아마 상위 자아를 아트만 또는 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마음 안의 관념일 뿐이야.
네가 그것을 아트만이라 부를 때,

너는 그것을 높은 차원에 올려다 놓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기억의 한 부분에 불과해.
그러므로 '나'의 모든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기억, 관념, 상념들을 이해해야만 해.
기억, 관념, 상념은 동일한 것이야.

 

상념이나 기억이 없다면 자아는 존재할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기억을 이해해야만 해.
여기서 기억은 방금 전이나 어제 획득된 것뿐만 아니라,

수 세기 전에 획득된 것까지 포함되지.
기억은 축적된 시간 체험의 결과이고 과거의 모든 영향이야.
표면 의식 속에 있든 잠재의식 속에 있든 이 모든 것은 다 기억이야.

 

하지만 기억을 낱낱이 조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하지만 시간은 진리를 드러낼 수 없어.
왜냐하면 진리는 무시간적이고 항상 현재이기 때문이야.
따라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시간적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버릇이 있어.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는 항상 저 멀리 있을 뿐이야.
이제 우리는 이런 인식에 도달하게 돼.
생각은 기억의 결과이고 기억은 반드시 즉각적으로 녹여야 된다는."

 

그가 계속 말했다.
“자, 이제 알겠지. 자아는 단지 기억의 다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은 상념의 형태로 자신을 투사해.
생각과 자아는 분리돼 있지 않아. 양자는 하나야.
그것은 결코 진리일 수도 없고, 진리를 드러낼 수도 없어.
우리는 반드시 마음을 초월하고 기억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 곳에 이르러야만 해.
하지만 기억이 작동하는 한 시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 시간은 실재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