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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요가]행위에 대한 이해

Vegan Life 2021. 12. 3. 23:18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는 반드시 일정한 패턴을 따르는 이 잘못된 과정을 이해해야만 해.

습관은 결코 올바른 행위가 될 수 없어. 올바른 행위는 반응이 아니야.

하나의 패턴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행동은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야.

왜냐하면 너는 그것의 잘못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너의 행동은 패턴의 반복이야.

이런 식으로는 결코 평화와 조화가 있을 수 없어.

하지만 네가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할 때 그 잘못은 떨어져 나가게 되고 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

 

올바른 행위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평화로운 접근이야.
그것은 욕망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생명을 이용하려고 애쓰는 난폭한 접근이 아니야.
그것은 필연적으로 슬픔과 갈등을 낳는 자아의 표현에 불과해.
그런 행동은 관념의 결과야.
그것은 네가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한계 없는 상태에서 작동하는 진정한 행위가 아니야.
네가 잘못을 이해할 때 너는 비로소 올바르게 행위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관계를 통해서 그것을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어. 이해되니?"

 

“예.” 내가 대답했다. “일상 삶의 관계 속에서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자명합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관념, 전통, 시스템, 관습에 따른 개인적, 집단적 행위가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그것에 순응하는 것으로는 임박한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원인을 이해함으로써만 변화를 낳는 올바른 행위가 가능합니다."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변화는 시간의 경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일어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결코 무시간적인 존재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시간적 상태에서만 고요, 자유, 평화, 행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시하는 거야.

세계 곳곳에서 갈등, 가난, 고통, 파업, 국지전 등이 벌어지고 있어.

이것들은 결국 전 지구적인 규모의 고통으로 발전되지.

하지만 그 문제들은 해결될 수 없어. 왜냐하면 거짓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이것을 지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 실제 체험이 있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해.

너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잊어버려야만 해.

나는 그 누구의 말도 인용하지 않아.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 때 그 때 너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돼.

 

만일 네가 어떤 관념을 따르게 되면 이해는 불가능해. 그것은 맹목적 순응에 불과해.

그러므로 관념과 행위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

만일 관념이 앞서게 되면 너는 그 관념에 순응하게 돼. 그것은 단지 관념에 대한 모방에 불과해.

우리의 문명의 전 구조는 대립되는 관념 위에 세워져 있어.

 

그것이 바로 혼란과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야.

대립되는 관념들로 인해 세계는 분리돼 있어.

관념들의 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당을 짓는 것은 어리석고 유치해.

그것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징표야.

성숙한 사람은 인간적 갈등, 전쟁, 기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편당을 짓는 것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조건화시키는 거야.

그렇게 되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불가능해.

 

만일 관념들이 너의 행동을 짓게 된다면 바로 그 행동에 의해 더욱 큰 불행과 혼란만 부추기게 돼.

그러나 너의 행위가 관념이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걸 네가 인식하게 되면

개선할 필요가 없는 긍정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게 돼.

 

그런 상태는 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야.

그것은 관념의 본질과 그 작용의 메커니즘, 그리고 행동의 형성 방식 등을 이해했을 때만이 가능해.

 

관념으로부터 만들어진 행동은 진정한 행위를 해쳐.

그러한 행동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는 것은 헛된 짓이야.

관념에 바탕을 두지 않은 행위만이 갈등과 적의로부터 자유로운, 항상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내 말 이해되니?"

 

“예.”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는 알 수 있을 거야.” 그가 계속 말했다.

 

“지배욕이 얼마나 악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타인의 생각을 자기 뜻대로 좌우하려고 강제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것을 반복해서 봐왔어. 우두머리나 모사謀士를 만드는 것은 너 자신이야. 왜냐하면 너는 혼란돼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는 우두머리나 모사에게 의지하는 거야.

 

사랑, 이해, 친절, 자비가 진정 유일한 힘이야. 이 실재의 힘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줘. 책략, 권력에 사로잡힌 마음은 결코 사랑을 알지 못해. 사랑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너는 이해를 미룰 수도 있어. 너는 그것을 지성적으로 회피할 수도 있어. 너는 임시방편들을 만들 수 있어. 그러나 선의가 없다면 불행과 파괴만이 증가될 뿐이야. 상식적인 인간에게 이것은 자명한 거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관념도, 청사진도, 더 나은 지도자도 아니야. 필요한 것은 선의, 자비, 사랑, 친절이야.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친절을 갖춘 사람들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해.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타인을 사랑하길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타인이 친절하고 자비에 넘치기를 기대할 수 있겠니?

 

사랑은 하나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야.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의 특정한 신을 숭배하고 있어. 그것은 다른 신을 믿는 신자의 믿음과 대치될 수 있지. 그렇지 않니?

 

어떤 이들은 특정한 이미지, 석상, 목상, 또는 신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숭배해. 이것은 자신과 타인의 야만성으로부터의 놀라운 도피행위야. 하지만 그것은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않아. 사랑이 유일한 해결책이야.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는 거야. 이웃은 네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의미해. 아들아, 그것이 진리야. 그것은 단순한 관념이 되어서는 안 돼. 그것은 내면의 역동적 변화야. 왜냐하면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외화外化되기 때문이지. 이것이 그리스도 요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