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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n Life
모든 힘의 남용 뒤에 숨어있는 동기는 결핍에 대한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자신에게 힘이 없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생애에서 빈곤의 경험을 창조한 것은 힘의 남용이 아니라 자신이 무력하다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전생의 행동을 일으킨 동기가 되었던 결핍에 대한 믿음이 또 다시 현생에서 나타났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전생에서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다른 믿음으로 당신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 옴니 - 업(카르마)은 행동이 아닌 생각에서 비롯된 것!!
나는 내가 항상 안전하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순간순간 나 자신의 경험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과 전혀 상관이 없고 오직 자기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뜻으로 언제나 자신의 결핍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내면세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모든 것과 모든 존재를 아무런 의문과 의심없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의 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신의 능력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할 때 수용과 허용의 자세도 결여되기 때문이다. 허..
만트라는 신비한 힘을 가진 음절이나 한 단어 또는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만트라를 유념하여 계속적으로 반복하게 되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의 무의식적 마음속에 자동적으로 저장이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날 때 만트라는 횃불이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만트라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세상의 모든 영적 전통들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만트라로 정화된 마음은 죽음의 순간에 어둠을 몰아낸다. 만트라는 현세에든 내세데든 필요로 할 때면 항상 도와주는 귀한 친구다. 끊임없이 만트라를 반복함으로써 수행자의 무의식에 깊은 자국이 새겨지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 자국을 따라 흐른다. 만트라는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고 죽어가는 이가 두려움 없이 피안으로 건너갈..
수학에는 숫자 1이 있다. 모든 숫자들은 1의 배수이다. 이처럼 이 우주에는 하나의 절대적인 실재가 있고 이 우주의 다른 모든 이름들은 그 하나의 배수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몸과 내적 상태와 외부세게의 세 각이 삶의 정삼각형을 구성한다. 모든 수들이 측정할 수 없는 하나의 점으로부터 나오듯이 전 우주도 측정할 수 없는 공(空)으로부터 나온다. 삶은 그가 원이나 영에서 비유한 하나의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다. 이 원은 한 점의 확장이다. 죽음과 탄생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점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삶은 이 두 점 사이의 선이다. 삶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무한한 선이다. 0을 먼저 쓴다음 1일 놓으면 01이 된다. 만일 1이 먼저 나온다면 0은 가치를지니게 되지만 만일 1이 먼저 나오지 않는다면 0은 아무런..
"모든 명칭과 형태의 이면에는 현대의 과학자들이 아직 그 전체를 밝혀내지 못한 통일된 원리가 숨어 있다. 베단타나 고대의 학문들은 생명속에 내재된 그러한 법칙들을 가르쳐주고 있지. 오직 하나의 생명력만이 존재하며 이 우주의 모든 형태의 이름들은 그 하나의 변형일 뿐이야.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이며 같은것이기 때문에 두 물질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아.물이 얼면 얼음이라 하고 증발될 때는 수증기라고 하지. 어린 아이들은이처럼 똑같은 물질이 세가지 형태를 띠는 것과 그것이 취한 형태만 다를 뿐 분자구조가 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어린 아이와 같아. 그들은모든 물질에 내지된 통일성도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원리도 깨닫지 못하고 있어." - 히말라야 성자들의 삶 p...
"나는 신의 은총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음식과 보금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음식걱정, 잘 곳 걱정을 하는 것은 완전한 믿음이 아니다. 신만이 나의 모든 것이며 신이 아닌 어떤 것에 의지하는 일은 내 잇ㄴ생에 파국을 초래한다는 것을 내 생명의 숨결이 다할 때 까지 나는 믿을 것이다. 나는 신께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베풀며 항상 내 앞에서 걸어가고 계심을 본다." - 스와미 라마 - 에이맨... 히말라야 성자들의 삶 p.217
진아를 깨닫고서 그것이 모든 존재의 근원인 우주의식, 즉 대아와 하나라는 자각에 의해서만 신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승에게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내면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신은 당신 속에 있다. 당신 속에 있는 것이라면 스스로 보아야 한다.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신을 보여줄 수 없다. 각자 스스로 진아를 발견함으로써 신이라고 하는 '전체'를 깨달아야 한다. 히말라야 성자들의 삶 p92
마야(Maya) Ma : 아니다. Ya : 그것, 즉 실체 신기구처럼 마치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마음과 기(氣)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대상에 쏟으면 그것이 마치 존재하는 것 처럼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마야다. 절대로 악, 악마, 죄, 아비드야(무지) 등과 같은 것에 집중하지 마라. 그러면 스트레스나 고민 같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게 될 뿐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도 자신의 의식이 진보되지 않는 것을 세상탓으로 돌리는 수가 많다. 나약함이 장래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지함, 정직성, 성실성과 같은 미덕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나약함을 밖으로 투사해 세상 사물이 장애의 원인리라고 생각해 버리는..
외로운 사람은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완전한 충만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참 자기'를 자각하지 못하고 바깥 세계의 사물이나 사람에 의존할 때 당신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깨달음을 위한 모든 탐구는 바로 자기 내면의 보물을 찾는 것이며 자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데 있다. 당신은 완전하다. 외부의 어떤 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만남 중에서 지고의 만남은 참된 자아와의 만남이다. 자신속에 있는 진아를 깨달는 사람은 결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자신 속의 진아를 잊고 있다. 외적인 관계에 의지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며 그것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내면의 벗을 발견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한 물건" (6조 혜능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그 물건) 억지로 여러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지 말지어다. 다 옳은것이니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면 곧 어긋나리라. (도덕경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과 같은 구절) 一心法 見性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돌아가거니와 이 한 맛의 자취마저 털어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내게 되나니... 이 몸 이때 못건지면 다시 언제 건지랴!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